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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미동맹 70주년

카르타고와 로마는 기원전 약 100년간 1, 2, 3차 퓨닉(Punic)전쟁에 휩싸였다. 결국 기원전 146년에 카르타고는 멸망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은 2차 퓨닉전쟁에서 장군으로 승리했다. 카르타고는 3차 퓨닉전쟁에서 패해 멸망했다.   로마에게 카르다고는 눈엣가시였다. 하지만 당시 카르타고 성벽은 너무나 견고해 함락할 수 없었고, 지하에는 바둑판처럼 수로가 건설되어 있었다. 또 카르타고는 비옥한 곡창지대여서 포위한다고 해도 10년 먹을 물과 곡식이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런데 로마는 3차 퓨닉전쟁에서 간단하게 카르타고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었다. 카르타고에 반역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명문가 귀족인 아스틸락스가 장본인이다. 그는 카르타고의 성벽과 지하수로 도면들을 훔쳐 로마 원로원에 팔아넘기고, 자신이 직접 6만 명의 로마군과 함께 카르타고로 진격해 성벽의 약한 부분들과 샛길, 지하수로의 출입구를 알려 주었다. 결국 카르타고 왕국은 로마군에게 점령당했다. 카르타고는 이렇게 역사에서 사라졌다. 반역자 한 명으로 인해 이 얼마나 처참한 역사인가.     카르타고의 멸망을 2169년 전의 일로만 치부할 수 있겠는가. 어떤 이유에서든 이적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얼마 전 미 정보기관의 동맹국 도청 의혹 기밀문건 유출 사태가 있었다. 한 병사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미국이 곤경에 처했다. 한국도 피해 당사국으로 곤혹스러워했다.  일개  병사가 일으킨 파문이 미국 주도의 세계 안보 질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만은 사실이다.     한국은 78년 전 자력으로 해방을 맞은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전쟁 승리로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났다. 그 후 한반도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자유민주주의 남한과 공산독재정권의 북한으로 나뉘었다. 이념 갈등으로 한반도는 혼란에 빠졌고, 소련의 도움을 받아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은 한반도를 폐허로 만들었다.     전쟁의 상흔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던 나라가 오늘날처럼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그것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설득해 얻어낸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은 든든한 혈맹으로 한국이 북한의 쉴 새 없는 군사도발을 막아내는 데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군사동맹으로 출발한 한미 관계는 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확대됐다. 이런 교류와 협력을 통해 한국은 세계 10위 권의 경제 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양국은 다양한 첨단 분야를 포괄하는 기술동맹으로 동반 성장을 이어갈 것이다.   올해는 한미동맹 70주년이 되는 해다. 이 역사적인 해에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12년 만에 미국을 국빈 방문했다. 250만 재미동포는 윤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안보에 관한 더 강력한 메시지가 있기를 바란다. 북한은 휴전협정 후에도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며 결국 핵무장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에 한미 양국은 이에  강력히 대처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안보협력이 요구된다.     더욱이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적 위협은 묵과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들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북한이 핵을 앞세워 어떤 도발을 감행할지 매우 위태롭다. 핵이 없는 우리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핵 확장억제라는 개념으로 핵우산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정권에 따라 미국의 국익에 부합되는 것만 추구할 수 있기에 이에 대비한 한국의 독자적 핵개발 문제도 심도 있게 논의되기를 바란다.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 너무 많은 것을 북한에 잃었다. 특히 군사적인 면에서 고대 카르타고의 교훈이 현실로 나타날까 두렵다. 한미정상은 더욱 철저한 반공태세 논의에 초점을 맞추어주길 소원한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기고 한미동맹 카르타고 왕국 당시 카르타고 한미동맹 70주년

202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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